우라카미 쿠니오의 장세구분법이 우리 증시 역사속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살펴보았으나 사실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폐쇄경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환율이나 원자재 가격의 변동과 같은 변수들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 두번째는 경기순환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 정부가 유동성을 푼다고 하여 반드시 산업자본이 이에 반응해 설비투자를 늘리는 것은 아니며 시중자금이 증시로 향하는 것도 아니다. 일찍이 유명한 경제학자 케인즈는 시중에 유동성이 지속적으로 공급됨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침체상태에서 회복되지 못하는 현상을 유동성함정 이라는 용어로 표현한 적이 있었는데, 이것이 장세구분법이 탄생한 일본증시에서 발생하였었다.


92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금리를 낮추어 제로금리 시대를 열었으나 금융장세와 실적장세는 나타나지 않고 주가가 끊임없는 하락세를 보이며 오늘날 '잃어버린 10년'으로 지칭하는 침체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일본경제는 왜 공격적인 금리하락에도 반응하지 않고 경기순환론의 모델에서 벗어났을까?

그 이유는 1980년대 후반의 일본경제가 말 그대로 버블경제 였기 때문. 일본은 1980년대에 끊임없이 경상수지 흑자를 누적해가며 세계 제일의 채권국이 되었고 1985년 '플라자합의'이후 환율이 급등하면서 JAPAN MONEY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플라자 합의 : 또한 이 합의는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의 간접적인 원인 중 하나가 된다. 플라자 합의로 일본의 수출이 감소하면서 성장률이 크게 떨어지자,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책을 위해 금리 인하와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책을 썼다. 이 결과 그렇지 않아도 이미 1980년대 초부터 팽창 분위기였던 일본의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에는 엄청난 거품이 생기게 되었고, 이것이 1980년대의 거품경제로 이어진 것.


일본의 자금이 전세계로 퍼져 뉴욕 맨해튼의 고층빌딩을 사들이고 COLUMBIA PICTURES를 인수. 열도 전체에서 은행 대출을 바탕으로 한 부동산 투기 붐이 일어났다. 은행 대출이 이토록 늘어난데에는 정부의 저금리 기조로 예대 마지만으로는 은행영업이 어려웠기 때문. 그래서 으냏ㅇ은 부동산 담보대출을 남발하여 투기에 나섰던 것. 증시에도 과잉유동성이 몰리면서 버블을 양상해냈고, 이때 증시에 들어온 사람 대부분이 부동산에서 크게 재미를 본 사람들이었다.


기업들 또한 증시로부터 자본을 조달받는 것이 아니라 기업 내 쌓인 이익 잉여금으로 주식시장에서 재테크에 열중하는 웃지못할 현상까지 벌어졌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이러한 초대형 버블의 붕괴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였는지도. 이러한 국면에서는 금리를 아무리 낮춰 추가 유동성을 공급하려 해도 이미 범람한 유동성에 익숙해 있던 일본 국민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교조주의를 경계해야. 우라카미 쿠니오의 이론이 여러가지 측면에서 매우 유용하지만 한계 또한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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