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하반기 사회분위기는 매우 어수선했다고. 

신행주대교가 붕괴하고 신당창당설이 나돌면서 증시가 500포인트를 붕괴하고 투자자들의 마지막 희망까지 날린다.


정부가 바닥을 모르고 빠지는 증시를 부양하기위해 8.24(빨리사)조치를 내놓는데, 시중금리의 하향 안정화 방안, 기관의 주식매수 방안, 투신사 자사주 펀드 허용, 포스코와 한국전력에 대한 외국인 매수 허용등이 있따.


여기서 기관 주식 매수 방안이 골치를 때리는데, 이게 얼마나 정부가 강한 세력인지 알 수 있다.


재무부는 은행에게는 신탁계정 월별 수탁고 순증가분의 25%로 주식을 사라고 지시했고 보험사에게는 보험수지차액의 20%를 주식으로 사라고 지시했다. 한편 연기금에게는 1년간 1조원 이상의 돈을 증시에 퍼부으라고 권유. 지난 번 이명박 정부가 연기금을 동원해 저점 사수를 한 것과 유사한 것.


정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기관은 주가가 안정될 때 까지는 순매수만을 유지하도록 강요받았는데, 당국에서는 산하기관의 주식매매동향을 매일 체크하고 감독하여 재무부에 보고함.


지금 생각하면 자유시장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조치였지만 그 효과는 증시에 빠르게 나타났다. 시세가 456포인트를 찍고 장대양봉을 하나 만들게 되는데 이 양봉이 빨리사 조치의 결과물


이를 계기로 증시는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저항선을 돌파하며 올라갔다. 동시에 금리의 급격한 하락이 일어났는데 시중금리를 기준으로 보면 1년동안 20%에서 12%까지 무려 8%나 하락하였다.


증시에 유동성이 풀리면서 고객예탁금은 3조원에 이르게 됨.



거기에 더해 외국인들이 일찌기부터 군침흘리고 있었던 포스코와 한국전력에 대해 매수가 허용되자 저PER주에서 크게 해먹고 어디로 들어갈까 고민하던 외국인들은 공격적으로 이들을 매수하기 시작.


재미있는 것은 억지스런 조치고 증시가 부양되긴 하였으나 실물경기는 여전히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다.

이 시기를 금융장세로 보면 적절.


금융장세의 끝자락에서 나타난 조정은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 촉발되었는데, 가장 핵심적인 사건은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93년 8월 12일 대통령 긴급명령을 통해 실시된 금융실명제.


시장은 이에 크게 출렁였지만 곧 이것이 장기적으로 악재라고 볼 수 만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시세는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 서서히 실적장세가 다가옴.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이후, 금리는 93년 8월을 기점으로 상승전환. 주가는 기업실적의 호전을 바탕으로 상승을 이어갔는데 이때의 주도주들로는 삼미특수강, 한보철강, 대우통신등의 저가대형주들이었다. 


이 저가 대형주들이 실적장세의 첫번째 상승파동이 되었고, 이는 우라카미 쿠니오가 실적장세의 전반부는 소재산업에 속하는 저가 대형주들이 선도한다는 지적과 일치.


소재산업은 경기가 좋아지면 그 수요가 광범위하게 증가하므로 경기호전에 가장 먼저 반응하게 된다.



이 당시 금융장세에서 실적장세로의 이동을 가능케했던 가장 핵심적인 요인에는 신 3저라고 불리는 엔고(달러약세) 글로벌 금리하락, 유가하락 요인과 반도체특수로 불리는 기업실적 호전요인이 있었다. 각각이 왜 실적 장세를 자극하는 요인이 되었을까?



1993년 상반기, 미국 클린턴 정부가 1000억 달러에 이르는 대일본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엔고를 욘인하는 입장을 취함.

그러자 엔화가치가 폭등세를 보여주었고,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같은 경웨 큰 반사이익은 안겨주었다.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던 자동차, 전자, 조선주들의 수출경쟁력이 크게 증가한것. 이것이 엔고에 의해 우리 증시가 탄력.


한 편, 2년넘게 지속되어 온 경기불황을 타계하기 위해 1992년 선진국들은 일제히 금리인하 공조체계에 들어가게 됨 

그 결과 선진국 경제에 급격한 유동성 팽창이 일어나면서 소비가 증가할 여건이 마련됨.

이 또한 이들을 상대로 수출을 해야하는 우리나라에게 큰 호재.


마지막으로 이 당시 국제유가는 배럴당 16달러 정도였는데, 이는 이라크가 수출을 재개하면서 원유공급이 늘어나고 냉전체제가 종결되면서 정치적 리스크 또한 사라짐.

원유를 전적으로 대외수입에 의존하던 우리나라입장에서는 원가 절감이라는 강력한 우군을 얻게됨.


이러한 신3저 효과를 가장 톡톡히 본 업종은 뭐니뭐니해도 반도체 업종. 이는 4MB DRAM의 최대 수요처인 미국 컴퓨터 업체들이 발주처를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리기 시작했기 때문. 1994년 국내 반도체 수출액은 100억달러를 돌파. 때마침 D램경기가 호황을 누리고 있었던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실적장세의 제2상승국면을 장식한 종목들은 반도체 업체인 삼성전자를 포함한 블루칩이었다. 삼성전자는 이 기간동안 4만원에서 14만원까지 올라가는 폭등세를 보여주었다. 

*블루칩, 포커에서 가장 높은 금액을 나타내는 칩 색깔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량주를 뜻함.


POSCO는 93년 11월 3만원을 돌파한 후 9월 9만원까지 올라갔다.

그 외에도 현대차, LG전자등이 장세를 이끌었다. 이와 더불어 앞의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산주로 부각된 중소형 우량주들이 폭등세를 보여주었다. 이 또한 우라카미 쿠니오의 '실적장세의 후반부는 가공산업에 속하는 종목들과 중소형 우량주들이 선도한다'라는 지적과 일치하는 것


그 후 반년 넘게 소강상태를 보이던 주가는 막판 불꽃을 발생시키는데 이 때 개투들이 상투근처에서 마구잡이로 주식을 사는 버블의 막바지 단계. 장기간 소외되었던 종목들까지 동반 상승하면서 종합주가지수는 1100포인트를 돌파하게 됨.


94년 11워르 1145포인트에서 꼭지를 친 증시는 역금융장세로 돌입. 이때 대다수의 종목들이 하락세로 접어들었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신고가를 경신하며 올라갔던 종목들이 있었으니 이것이 삼성전자, 삼성화재, SK텔레콤, 현대차, POSCO등의 초우량주들이었음.


초우량주들마저도 상투를 치고 장기하락국면으로 접어들자 늘 그렇듯 잡주들의 장세가 나타남. 성장성을 무기로 대중들의 기대를 먹고 날아다닌 개별테마주들은 늘 역실적 장세의 끝자락에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



모든 투자자들을 초토화시킨 I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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